종이

드로잉과 Edge 작업에 사용하는 종이는 ‘파브리아노 5, 뉴아띠스띠꼬 / 세목 / 300g과 아르쉬’를 많이 사용한다. 10, 25장 낱장 묶음은 선택의 폭이 넓지만 판넬(표준어는 패널이지만 이하 판넬로 하겠음)에 물배접을 위해선 롤을 선택해야 하는데 아르쉬는 폭이 130 또는 113cm로 큰 작업엔 비교적 제한적이다. 그래서 폭 140cm의 파브리아노 뉴아띠스띠꼬 세목을 선호한다. 마스킹 테이프도 흠집 없이 잘 떨어지고 파우더와 밑 작업과 밀도 있는 면 처리도 좋다. 그리고 아르쉬에 비해 저렴하다. 중목 또는 황목은 드로잉에서 많은 여백으로 드러나는 종이의 질감과 표면 요철을 긁고 지나간 연필 선의 힘조절이 우아하게 표현된다. 디지털 작업에서 가져볼 수 없는 물성이다. 

큰 판넬 작업을 위해 ‘캔손 Ca grain 데생용 켄트지 / 224g / 1.5x10m’를 구입해서 사용 중이다. 물배접 과정에서 천으로 종이를 펴면서 물을 바른 반대쪽에 한 두 방울 떨어진 물방울로 종이의 표면에 흠집이 생겼다. 마스킹 테이프에도 예민해 떼는 과정에서 종이가 뜯길 수 있다. 앞면은 매끈하고 뒷면은 약간의 질감이 있는데 수채화지의 표면과는 차이가 크다. 뒷면 모서리에 캔손 브랜드 이름과 로고가 압인 되어있는데 글씨가 바로 보이는 쪽이 뒷면이다. 이 종이로 수채화를 하진 않지만 물감을 바르기엔 뒷면이 더 좋아 보인다.(아직 해보진 않았다)
보통 롤페이퍼는 말린 안쪽이 앞면이고 바깥으로 드러난 쪽이 뒷면인데 물배접할 때 뒷면에 물을 바르고 뒤집어서 판넬에 펴서 타카로 마무리하는데 캔손은 압인이 반대로 되어 앞면에선 보면 글씨가 뒤집어져서 보인다. 장점은 시각적으로 방해가 덜된다는 것과 그 위에 연필 선을 덮어도 괜찮아 보인다(그 위에 그려보진 않았다). 
아무튼 이 종이를 더 사용하진 않을 것 같다. 

연필 작업에서 넓적하고 굵은 선, 생기 있는 선을 표현하는 비교적 밀도가 적은 작업엔 중목을 사용하는데, Edge 작업에선 대부분 핫 프레스로 표면을 곱게 처리한 세목을 주로 사용한다. 참고로 중목은 콜드 프레스 과정을 거친다고 한다. 

아래는 내 작업에 맞는 종이를 정리한 것. 

Arches AquarelleCotton 100%수채화중목
Arches Lavis Fidelis / En-Tout-CasCotton 25%연필 / 펜 / 잉크
Arches Huile100%오일중목
Fabriano ArtisticoCotton 100%수채화 / 연필세목
Fabriano FtturaAlpha Cellulose  100%아크릴 / 오일
Fabriano Fabriano 5Cotton 50%연필 / 목탄 / 콘테 / 잉크 / 펜세목

Ai와 홈페이지

티 안나는 일로 며칠을 보냈다. 2개의 홈페이지를 옮기는 일이 내 직업 -이 경우엔 다수의 보편적 직업일지라도 개인의 일을 특정한 것에 가깝다- 의 불투명성과 유사한 게 마치 매몰 비용과 비슷하다. 
웹사이트 운영엔 필요한 것들이 많은데 우선 도메인을 구입해서 컴퓨터가 이해하는 퍼블릭 IP로 변환해 주는 네임 서버 작업이 필요하다. 개인이 할 수 없으니 도메인 등록 대행업체에 필요한(아직 남아있는) 도메인을 구입하고 관리를 맡기는 게 필요하다. 대략 26년 전 첫 홈페이지를 만들었을 때 웹사이트 관련 생소한 용어와 기술을 익히는데 밤새 매달렸던 기억이 있다. 할만하다 싶어 졌을 땐 홈페이지에 게시판을 붙이고 회원제 운영을 하려는 쓸데없는 시간을 허비한 적도 있었다. 다행히도 그래본 적은 없지만 개인 작품을 올리는 포트폴리오 사이트에 한계를 뛰어넘는 호기심과 넘쳐나는 시간을 가진 사람이 아니고선 누가 회원 가입해서 게시판에 글까지 남기겠는가. 
이것저것 해보는 20대 때의 경험이다. 그러나 지금도 홈페이지는 만지작거리고 있다. 요즘엔 대부분 SNS나 미술품 판매 플랫폼에서 검색하는 게 일반적이라서 작가의 홈페이지를 찾아보는 시대는 지나갔다. 그런데도 홈페이지를 아직도 운영하는 건 일종의 사회활동이다. 작가 활동은 작업과 그 작업을 대중에게 ‘나는 이런 방식으로 말하고 있어요’라는 사회 활동을 포함하고 있는데 그걸 최소화하고 있을 뿐이다. 

처음 홈페이지를 만들었을 당시 독일에 머물고 있던 때라 de가 붙는 도메인을 사용했었다. ADSL 통신을 이용했던 거 같은데 지금 생각해 보면 말도 안 되게 느렸다. 작은 이미지의 그림과 텍스트 기반의 HTML/CSS로만 구성된 페이지라 pdf로 만든 것 보다도 단순한 구성이지만 그 정도도 감지덕지였다. 한국에서 일반에게 인터넷 접속이 처음 시작된 게 1993년인데 92년에 한국을 떠난 뒤라 안타깝게도 첫 접속을 경험하지 못했었다. 80년대 후반쯤 경이를 만난 시기와도 맞물려있던 무렵에 9600bps 모뎀으로 케텔에 접속해 여러 텍스트를 훑고 다니던 게 신나고 재밌었는데 기억나는 건 하나도 없다. 전화선으로 접속하는 방식이라 모두가 자는 밤에만 사용했었다. 

아무튼 서버를 옮기는 게 필요했는데 이게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서브 잡도 아닌데 깊이 공부할 필요도 없었고 새로운 게 머리에 쏙쏙 들어오는 나이도 아니어서 이제 웬만한 건 벅차다. 지금과 같은 구성으로 운영하고 있던 터라 필요에 따라 서버를 옮겨야 하는 건 어쩔 수가 없다고 생각하고 며칠 동안 시간을 보냈다. AWS 라이트세일로 서버 운영을 하고 있는데 AWS는 아마존의 클라우드 컴퓨팅 시스템 서비스다. 한국의 호스팅 업체를 오랫동안 이용하다가 AWS로 옮긴 지도 좀 됐다. 처음엔 서버 이용 가격 계산부터 이해가 안 돼서 이걸 해야 하나 싶었는데 지금 보면 합리적이고 사용하기 편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그래도 사용료 계산은 내가 이용하는 것만 안다. 다른 건 알고 싶지도 않고 복잡하다. 이런 주제는 이해하기 어려운 개인 경험을 늘어놓는 거라 개인 홈페이지라도 공공에 개방되는 곳에 올려도 되나 싶은데 개인기록이 목적인데 뭐 어떠냐.

AWS에서 처음 세팅한 건 비트나미+OS 구성이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워드프레스가 php 상위버전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업데이트를 하려니까 비트나미가 필요할만한 것들을 묶은 패키지 구성이라 php만 달랑 업데이트하는 게 꽤나 까다로웠다. 그래서 인스턴스(가상 서버)를 추가하고 우분투+Nginx 웹서버+php, php-fpm+MariaDB+인증서등을 설치하며 알맞게 설정하는 게 내 수준엔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다. 게다가 서버 이전을 2개나 해야 하는 건 아찔한 일이다. 90년대 방식으로 책에 의지했으면 끝이 안 보이는 일이고 구글링을 해도 하나하나가 다 고비다. 

GetGPT에 도움을 받아 서버 이전 2개를 이틀 만에 끝낸 거 같다. 자잘한 마무리까지 3일 정도 걸렸는데 구글링으로 시작했다가 첫 문턱에 걸려 넘어졌을 때 바로 ai로 넘어갔다. 하도 이것저것 많이 물어봐서 채팅창이 몇 번이나 넘어갔는지 모르겠다. 새 채팅창으로 넘어갈 때마다 지금까지 한 거 기억하냐고 묻곤 했는데 새 채팅창으로 넘어가면 주제가 바뀌는 걸로 인식하는지 약간의 설명은 필요했다. 아무래도 다 알고 있는 거 같은데 리플래시 돼서 등장하는 척하는 걸로 보였다. 미심쩍어서 몇 번 물었더니 새 채팅창이어도 이전 대화 기록 전체를 자동으로 기억하진 않는다고 한다. 이전 대화 내용을 볼 수 없고, 새로운 대화로 취급한다는데 다만 명시적으로 저장된 정보(내가 bio에 알려준 내용)는 계속 참고한다면서도 이전 대화 내용을 연속해서 이어서 참고하면서 대화하고 싶냐며 물어본다. 그렇다면 된다는 거잖아. 처음엔 참고만 하려고 했지만 마무리하고 보니 스크롤이 끝도 없이 내려가는 대화창이 수십 개나 됐다. 전문가를 옆에 두고 막힐 때마다 집요하게 물어봐서 해결하는 게 가능한 세상이 됐다. 게다가 공짜다. 무료라서 인지 한 주제로 채팅을 계속 열어두고 할 수는 없었다. 채팅창 사용 시간 제한을 두는 것 같았다. 아니면 유료 또는 하위 버전을 사용해보라는 안내창을 띄운다. 이런것 때문에 유료로 전환해야 하나 싶을 때 일이 끝났다. 

서버 이전에 GetGPT를 사용하기 전에 구글 제미니를 사용했는데 막히고 꼬인 게 풀리지 않아 같은 문제를 다양하게 물어보면 비슷한 답변이 나오다가 여러 차례 영어로 뿌리는 바람에 GetGPT로 넘어갔다. 짧은 경험으로 구글 제미니도 훌륭했다. 다양하게 답을 내놓고 정리하는 게 GetGPT가 좀 더 마음에 들었다. 다만 해당 주제에 너무 초보 거나 원하는 방향으로 끌고 가지 않으면 대화가 산으로 간다. ai는 던지는 질문의(사소한 것이어도) 문제 해결을 찾기 위해 지치지 않고 여러 안으로 대답하고 그 과정을 정리해 준다. 해결 안 되고 있는 문제로 질문을 여러 개 던지면 방법이 다른 답과 해결 과정을 길게 정리해 주는데 그때마다 다 따라 하면 망한다. 

GetGPT와 처음 나눈 대화는 고양이 이름이었다. 거기서 이름을 고르진 않았다. 뻔한 대답이었고, 흥미로운 이름도 없었다. 코딩이나 기술 관련 쪽에 탁월한 듯하다. 이름을 고민하던 고양이는 얼마 살지 못하고 무지개다리를 건너고야 말았다. 짧은 시간 함께 있었지만 슬픔은 컸다. 경이는 몇 날 며칠 눈물을 쏟았다. 너무 슬프고 가엽다.
평안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