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영된 네모나네 | Projected nemonane (PN)

PROJECTED NEMONANE (이하 PN 시리즈)

  • 개요

이번 PN 시리즈는 캐릭터의 기본 형태를 고정하고(예외도 있다) 외적 간섭을 네모나네 캐릭터에 투영해 표현하는 것이다. 캐릭터가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고유의 것이 과연 무엇인지 나 자신에게 되묻는 과정이 시리즈 내내 있을 예정이다. 캔버스 작업은 PN, 종이 작업은 PND로 구분하는데 종이 작업엔 Drawing의 약자를 붙였을 뿐 재료와 형식에서 캔버스 작업과 다르지 않다. 다만 시리즈 내에서 새로운 실험 내지는 작은 변화의 단계에서 종이 작업을 먼저 시작한다. 

  • 작업 과정 

캔버스 크기에 맞게 캐릭터의 기본 형태를 프린트해서 두꺼운 종이에 붙여 크기 별로 마련해 두고 캔버스에 라인 드로잉으로 작업을 시작한다. 기본 형태를 벗어날 경우엔 캔버스 위에 핸드 드로잉 한다. 캐릭터의 형태를 결정하는 라인을 기본 작업으로 시작하지만 라인을 허무는 형식으로 진행되는 시리즈도 있다. 

  • 투영 요소 (외적 간섭에 대해)

무엇을 그릴 것인지에 대한 설정에 앞서 이 질문은 이번 시리즈를 넘어 전체를 관통하는 근본적인 물음이기도 하다. 백지 위에 무엇을 그릴지 고민하는 건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빠짐없이 겪는 막막하고 답답한 과정인데 이번 시리즈에선 무엇을 그리지 않을 것인지를 생각해보고 그것을 설정하는 게 포함된다. 구체화된 사물, 사회현상과 자연현상을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방식 또는 그것을 상징하는 특정 이미지, 구체적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는 패턴, 심볼, 텍스트(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감상이 쏠리는 걸 내포하지 않기 위함-PN시리즈에 한정한다)는 포함하지 않는다. 제한된 영역을 설정하고 그 안팎으로 무엇을 채우거나 비우는 일련의 작업은 템플릿과는 다른 개념에서 출발한다. 설정된 기본 틀에서 출발한다는 것은 유사하지만 사용 목적과 기대하는 결과가 다를 수밖에 없다. 캐릭터 정체성 또는 세계관은 미리 설정한 정의를 통해 얻어지진 않는다. 반복을 통해 달라지는 결과들의 총체성, 제각기 다른 밀도로 할애된 시간이 켜켜이 쌓인 결과물, 무수히 많은 우연을 포함된 지향성이 고유의 성질 즉 정체성을 가지게 된다. 그러므로 이번 시리즈를 반복하며 선명해질 캐릭터의 정체성을 기대한다. 시리즈 초반인 현재까지는 회화적 형식은 직선, 곡선, 사각형 등 도형으로 표현하는 것으로 진행되었다. 제한된 영역 안에서 면을 구분하고, 색을 채우거나 공간을 비운다는 거시적인 틀만 가지고 있다. 

  • 나와 캐릭터 네모나네

네모나네를 만드는 과정은 단순하고 짧았다. 연필을 넓적하게 깎아서 윗머리는 가로 선, 옆머리는 세로 선으로 면처리를 하면서 만들어진 머리 모양과 다듬지 않은 사각형으로 얼굴, 몸통 그리고 팔, 다리는 직선으로 단순하게 붙여서 형태가 만들어졌다. 캐릭터를 만들겠다고 작정하고 시작된 게 아니었다. 길을 걷다가 이런저런 일을 겪는다는 짧은 애니메이션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그 애니메이션은 다시 공개하지 않기로 결정했는데 그 까닭은 사회적으로 분리된 것(다소 형편없게) 같은 개인적 심리상태를 드러내는 것뿐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심리상태를 드러내는 게 잘못된 건 아니지만 문제는 재미가 없었다. 

네모나네 제작 당시 장기적인 계획이 없었고 캐릭터의 세계관을 나와는 별도의 성격을 지닌 독립성을 부여하고자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깨닫게 된 건 내가 지구를 벗어나 우주 어딘가에 있더라도 “나”는 변하지 않는다는 것과 두 개의 자아와 세계관을 가지고 장기간 끌고 가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만일 제품을 위한 스토리 라인이나 일정 기간 동안 집중해서 만들어내는 프로젝트 -애니메이션 또는 만화- 였다면 가공해서 가져갈 수 있었을지도 -심지어 장기간- 모른다. 어떤 분야든 진정성과 진지한 태도를 가져야 하고 우열은 없다는 게 지론이다. 구조적으로 다르다는 것뿐이다. 스토리를 만들고 그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들어가는 구조에서는 스토리가 받쳐주는 힘으로 얼마든지 장기적인 시리즈로 가져갈 수도 있다. 그러나 조형예술에서는 스토리가 있는 듯하지만 없다. 그렇다고 없다고도 할 수 없는 이유는 본인의 삶에서 끊임없이 가져오기 때문이다. 무형식과 자율성이 전제가 되는 구조에서 -사실상 없는 구조- 특정 문법을 가져와서 적용할 수는 없다. 오늘 해야 하는 작업은 분명히 있다. 미리 하거나 나중에 할 수 없는 그런 종류의 작업이 적어도 내게는 있다. 사회적 현상과 사물의 본질이 정서적으로 감성적으로 맞닿아있거나 간극이 좁혀지는 지점에 관점을 갖고 내가 만든 논리와 작업 과정으로 치환하는 것을 일련의 작업으로 보고 있다. 그래서 네모나네는 나와 분리해서 시작했지만 결국 융합하는 과정에 이르게 되었다. 포기할 순 있지만 분리하긴 어려운 단계에 이른 시간이 만들어낸 결과다.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함께 살아가는 이 사회에서 개인으로 마주하는 모든 현상을 이해하려 노력한 해석의 결과를 작가로서 드러내는 매개로 캐릭터 네모나네를 사용한다. 다양한 형식으로 표현하고 있는 캐릭터 네모나네를 통해 개인과 사회의 간극에서 나타나는 고독한 개인의 정체성과 사회적 결핍을 나의 정서적 환경과 경험 위에 올려놓는 것으로 작품 세계관을 구성한다. 네모나네는 인간을 닮은 캐릭터이자 작가의 비언어적 표현, 즉 회화나 조형으로 불특정 대상과 정서적으로 연결하는 매개 역할을 하는 하나의 상징이다.